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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테스형’이 날린 새

노운서/논설위원·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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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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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운서.jpg

 

코로나 바이러스가 트롯트 영웅을 재 탄생시켰다. KBS에서 기획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이 그것이다. 코로나로 고향도 못간 추석민심과 스트레스 가득한 뉴스를 물리치고  나훈아 이야기는 그 어떤 정치인도 만들지 못한 훈훈한 꽃을 피우게 했다. 세계 곳곳을 연결한 모니터가 관중의 표정과 환호를 대신하는 언택트 공연은 나훈아 특유의 활기찬 동작과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조금 들뜬 그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여유와 힘이 믹스된 자신감의 상징으로 다가 왔다. 시청률 30% 이상이라고 언론은 보도한다. 그는 공연 중간마다 시청자들에게 톡 쏘는 말을 날렸다. 그의 공연은 흡입력 있고 그의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언론에서 심지어는 정치인들에게 조차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년 만에 나타나 테스형을 애타게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 나훈아! 그를 모르는 10대~20대들조차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테스형의 가사에 있지 않을까? 그가 쓴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노랫말은 우리 국민의 정서가 녹아 있고 그 음조는 우리 고유의 국악색이 묻어있다. 그의 작곡은 노랫말의 정서나 의미와 잘 어우러지는 멋스러움을 지닌다. 거기에 가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성의 가창력이 가미되어 대중가수로서 독보적 영향력을 지닌다. 그런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대중가수가 자기를 지켜보는 대중들을 향해 거침없는 말빨과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시국에 관한 굵직한 메시지를 툭 던진다. 그는 이번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세월의 멱살을 확 휘어잡고 끌고 가라’며 보통사람들에게 친근감있고 인상깊은 나훈아식 언술을 구사했다. ‘위기 때마다 나라를 지킨 건 유관순 안중근 등등 보통 국민이었고 이 코로나 시국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 1등 국민이라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대개의 국민이 공감하고 아니 세계가 인정하는 것으로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정치계에서는 나훈아 대중 인기몰이에 무임승차하려는 듯한 편협적인 해석과 태도를 보였다. 설사 언어가 가지는 함축성이 다의적 해석가능을 내포한다 해도 정파적 편가르기로 순수한 음악인의 얼굴에 먹칠이나 하지 않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의 발언은 자기에게 돌아올 후환 같은 자잘한 계산일랑 뛰어넘는 자유함과 진정성이 있다. 그러기에 자유함과 신념에 가득찬 화살이 권위를 향해 날아가 국민의 답답증을 풀어준 것이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의 소리를 내라, 기대한다’는 이 말도 그렇다.
그의 신곡 ‘아 테스형’의 가사를 보면 세월의 무게를 안은 나훈아를 엿 볼 수 있다.
도입부문 생략/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중간 생략/울아버지 산소에~/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자주 오지 못하는 나를 꾸짖는 것만 같다/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나훈아의 ‘아 테스형’ 노랫말 일부)
나는 추석 전날 전 부치다 말고 테스 형이 누구? 하다가 가사 안에 들어있는 소크라테스를 발견하고 한동안 넋놓고 노래에 빠졌다. 그는 2500년전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그까짓 세월의 경계와 학문의 경계 쯤 뛰어넘는 족적을 찍었다. 테스형을 친근하게 불러대며 온 국민들에게 철학의 명제를 툭 던져주는 그의 기발한 발상에 한 대 얻어맞은 충격! 너 자신을 알라는 대명제에 나훈아는 나는 모르겠다 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 소크라테스의 동생(?)답다. 세상은 왜 이리 힘들고 사랑은 무엇이고 세상은 왜 이러는지…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언급 한 후 천국은 있냐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사람들 목전에 떠올려 놓는다. 우리가 살면서 죽음을 목전에 인식하며 살아 본적이 몇 번 없을 거라는 것을 아는 듯 말이다. ‘테스형’은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애상어린 음악을 버무려 감정을 고조시키므로써 이성적 철학과 감성의 날개를 달아 놓았다. 보다 우아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려는 한 마리의 새처럼….
루크레티우스(로마의 시인, 철학자)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공포를 가지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다했던가? 나훈아는 추석, 아버지산소에 핀 노란 들국화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묻는 질문에 삶의 덧없음을 숨겨놓고 들국화와 대화로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모든 예술의 장르 중 음악만큼 인간의 영혼까지 빠르게 가 닿는 예술은 없다고 본다. 특히 나훈아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친근하고 의미 있는 노랫말과 문학적 요소가 많다. 2016년에 포크록의 전설로 불리는 미국의 음악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음악인으로서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수상의 의미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밥딜런처럼 싱어송라이터인 나훈아에게 노벨 문학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수일까? 하지만 나훈아의 노래는 우리국민 정서에 즐거움을 주고 코로나시기에 힘과 용기를 주었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훈아의 멋진 음악세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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