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1-21 (화)

"'민족·민주운동 거목' 오종렬 의장님 편히 쉬소서"

광주서 민족통일장 노제 뒤 망월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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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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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주·통일의 영원한 지도자 오종렬 의장님, 편히 쉬소서."

지난 7일 82세로 타계한 민족·민주운동의 거목 고(故)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마지막 길을 떠났다.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고 오종렬 의장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장례위)'는 1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노제를 치렀다.
 
노제는 민중의례, 연도낭독, 조사(弔詞·죽음을 슬퍼하며 표현하는 글이나 말), 조가(弔歌·죽음을 슬퍼하는 노래), 유가족 인사, 넋풀이춤, 헌화, 운구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장례위는 민주화·통일운동에 헌신한 오 의장의 뜻에 따라 자주 통일에 앞장서겠다는 염원을 모았다. 
 '사상은 뿌리 깊게! 표현은 얕고 낮게! 연대는 넓디 넓게! 실천은 무궁토록!'이라는 고인의 말도 되새겼다.
김정길 6·15공동위 광주본부 상임대표는 "의장님은 일생을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투쟁·헌신이 있었기에 민중이 주인되는 자주·평등·통일의 새 시대를 힘차게 열고 있다. 꿈과 염원은 우리에게 맡기고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백남수 전남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큰 뜻을 세우고, 조국 통일과 민중 해방 투쟁·교육에 앞장선 의장님의 뜻을 기리고 실천하겠다"고 전했다.
임상호 울산진보연대 상임대표도 "의장님은 억압·고통받는 민중들이 있는 곳을 찾아 항상 투쟁의 선봉에 섰다. 불굴의 투쟁 정신과 혁신 의지, 실천의 중요성, 변혁 운동의 나침반을 세우도록 일깨워준 큰 스승이자 지도자였다"며 "자주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의장님의 가르침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장례위는 노제 직후 대형 영정과 만장을 앞세워 금남로 일대에서 운구 행진을 벌였다.
이후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지(5·18 옛묘역)에 고인을 안장했다.
오 의장은 지난 7일 오후 10시57분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8년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난 오 의장은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고흥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국교사협의회 활동을 통해 교사 노조 출범에 적극 나섰으며, 198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에 기여했다.
이후 전교조 광주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1989년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전교조 활동 관련자로 구속되기도 했다.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직후 치러진 1대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광주시의회 의원에 당선,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도 맡았다.
 '미선·효순이 사건' 당시 주한미군 반대 시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운동,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 범국민운동, 광우병 촛불집회 등을 앞장서서 주도했다.
지난 2015년에는 2006년 한미 FTA 저지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1년10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한국 진보성향 시민운동을 진두에서 이끌었다.
5년 전부터 간경화와 급성신부전증으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진보진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담양에 '5·18 민족통일학교'를 지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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