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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일칼럼]‘순천시민의 상’ 수상한 강성채 조합장
    강성채 순천농협조합장이 2020년도 ‘순천시민의 상’을 수상했다. 농업과 더불어 살아온 그의 삶은 한마디로 ‘농심’이었다. 농민의 마음을 읽고, 농민의 대변자역할을 했었던 그의 꿈은 유년시절부터 싹을 띄웠었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복성리의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지금은 도시로 변했지만 전날의 복성마을은 산촌이었다. 그는 십리 길을 멀다않고 순천도심을 다녀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농심’의 아픔을 토로했다. 순천장날이면 나뭇짐을 지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이야기와 순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순천농업고등전문학교로, 동국대학으로, 고려대학원으로 진학했었던 학창시절의 아린사연들이 생생하다. 아마도 오늘의 농학박사를 만들게 한 밑거름으로 작용되지 않았는가 싶다.무엇보다도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花名故土 風吹新天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새 날을 연다. 어제 없는 오늘, 오늘 없는 내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반성해 본다는 자서전은 그의 삶이 녹아있다. 농협을 통해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농촌, 그 농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명서 역시 농촌을 떠나지 못한다.그렇다. ‘우리 농민들은 왜 이렇게 밖에 못사는가!’에 대한 답을 50년 넘게 찾았는데도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또는 학업이나 연구를 통해, 더 나아가 선거에 직접 나서서 농촌을 지키고 사는 그들과 약속을 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동분서주 했는데도,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더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다. 자서전이 말해주듯 그는 소농의 10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번민하면서 자의식에 눈 뜨던 시절의 기억부터 어린 시절의 농촌에 대한 애증은 남달랐다. 농협중앙회 28년은 농민을 위한 유통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습득했다. 주경야독으로 고려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맺은 인과관계는 물론 순천농협 20년의 생활은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심이 근본이었다. 특히 “농업은 생명창고”라는 철학을 잠시도 잊지 못했다. 자신과 운명적으로 삶의 괘를 같이 해 온 농업, 농촌, 농민, 농협의 미래만을 그렸을 뿐이다.그래서일까? 중앙인사들의 응원도 활기찼었다. 한호선 초대 직선 농협중앙회장은 “강조합장의 열린 마음, 지금도 여전히 타오르는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며 “평생을 농협운동의 최 일선과 중앙회 기획부서에서 주경야독하며 잔뼈가 굵은 빼어난 유통전문가로, 시대를 이끄는 농협운동의 지도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또 원철희 제 16, 17대 농협중앙회장은 “강성채 순천농협 조합장, 그는 나의 농협운동의 평생 동지”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60년 대 순천 중, 고등학교 선후배로 시작, 지난 반세기동안 강조합장과 인연을 같이 한 박권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농업의(of the agriculture), 농업에기초한(by the agriculture), 농업을 위한(for the agriculture) 인생을 걸어온 후배이자, 제자이고,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로서 농협 최초로 양재동에 하나로 클럽을 만들 때의 강성채 박사의 활약상을 회고했었다.그는 농협중앙회 신유통기획단장, 농협유통 청과사업본부장, 순천농협 조합장(통합 제4대), (현)순천농협 조합장(통합 제6대), 농림축산식품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MBC 시청자위원회 위원. 상훈으론 철탑산업훈장, 산업포장을 받았었다.‘순천시민의 상’은 올해로 26년째 역사와 전통을 가진 상으로 순천시의 명예를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농업농촌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강성채 조합장이 지난 15일 문화건강센터다목적 홀에서 수상했다.  주요 수상배경으로는 지난 2000년 고향으로 내려와 순천농협 경제상임이사로 첫발을 내 디딘 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순천의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농가소득을 위한 지역농산물다각도 판로개척, 농협합병을 통한 지역사회 통합, 건실한 경영을 통한 조합원·준조합원 배당 확대한 공로 등이다.특히 경제사업장활성화를 통한 지역민일자리창출, 파머스마켓의 지역농산물 판로향상, 문화센터 운영 등 시민의 농협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에 기여했다. 게다가 농업인 편익을 위한 농촌전기안전점검, 무료순회 진료, 개안사업, 무료독감 예방접종, 조합원권익지원센터운영, 게이트볼 대회 등 많은 실익사업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강성채 조합장은 “순천시민이자 농민조합원인 1만8000명과 임·직원 600명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인데 본인이 인정받는 거 같아 매우 뜻 깊고 영광스럽다”며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고 순천시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농민과 함께 살아온 그의 ‘농심’은 더욱더 푸르게 자라고 있다. “농업은 생명창고”라는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글을 잠시도 잊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이 영원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2020-10-19
  •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말
    오늘의 한글학회는 1921년 12월 3일 ‘조선어 연구회’로 처음 출발하여 1931년 ‘조선어학회’,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면서 겨레의 얼과 문화를 갈고 다듬어온 국어교육 연구단체이다. 일본의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학자들은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1929년 10월 31일 한글날 기념일에 각계 인사 108명이 모여 결성한 ‘조선어 사전 편찬회’에서 시작했다. 편찬회는 조선어학회와 함께 효율적인 사전 편찬을 위해 1933년에 형태주의 철자법인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1936년에는 '사정한조선어표준말모음'를 발표하였다.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에 대한 황국신민화(일왕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를 위해 특히 중시했던 것이 바로 ‘일본어 상용’이였다. 일본은 1938년 3월부터 조선 각급 학교의 조선어 과목폐지와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대신 일본어로 된 교과서 사용과 일본말만을 사용하게 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유학생이었던 박병엽(朴炳燁)은 함경남도 흥원읍 전진역에 친구 지장일(池章逸)을 만나러 갔다가 일본인 형사 후까자와(深澤)의 불심검문을 받게 되었다. 평소 반일 감정이 컸던 박병엽은 일본 경찰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답했고, 이로 인해 가택 수색까지 당하게 된다. 문제는 박병엽 가택에서 발견된 조카 박영희의 일기장이었다. 박영희는 당시 함흥 영생여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8살의 학생이었다. 박영희의 2학년 때 일기장에 “오늘 국어(일본어)를 사용하였더니 선생님께서 꾸중하였다”는 문장을 일본 경찰은 트집 잡아 수사에 착수했다. 일본 경찰은 박영희의 증인으로 그 당시의 교사인 정태진을 소환해 갖은 고문을 가했다. 이어서 최현배·이희승·이극로·정인승 등을 포함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줄지어 검거됐다. 증인으로 붙잡혀간 사람도 48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검거와 취조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작이다. 일본의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이 가속화할수록 우리말과 글에 대한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아울러 조선어학회는 1942년 3월 '조선말 큰 사전' 원고를 일본의 감시를 피해 인쇄 중이었는데, 일본경찰은 이를 알고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이라는 최종 판결을 내리고 이를 빌미로 한글 교육을 폐지하고 조선어학회의 회원들을 검거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울러 2만 6500여 장의 자료 카드를 증거물로 압수해 가면서,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한글학자 가운데 감옥에 구금된 29명은 물 먹이기, 공중에 달고 치기, 불로 지지기 등의 악형을 당하며 억지 자백을 강요당했다. 일본은 결국 이들을 엉뚱한 일에 연루시켜 치안 유지법 제1조에 해당하는 내란죄로 몰았다. 당시 흥원경찰서는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재판에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일부 회원들이 판결에 불복, 상고했다. 16명은 수감되고, 이 가운데 이윤재·한징 두 분은 모진 고문으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중단했던 '조선말 큰 사전'의 편찬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사전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함흥에서 서울로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본이 태워 없앤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울역 창고에서 '조선말 큰 사전'의 초고가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에 휩싸였다. 알고 보니 '조선말 큰 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로 무사히 옮겨 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조선어학회 회원들 때문이었다. 함흥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이들은 판결에 불복, 서울 고등법원에 상고했기에 일본 경찰이 제출한 증빙서류 '조선말 큰 사전' 원고도 서울로 이송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경황이 없어 창고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모진 탄압에도 끝까지 맞섰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희생으로 지켜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946년 광복을 거쳐 1950년 6·25전쟁 중에도 한글학회(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사전 편찬 집무를 이어갔다. 그리하여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28일까지 넷째 권 원고 교정을 마칠 수 있었다. 1953년 1월7일부터는 전주에 임시 사무소를 차리고 다섯째, 여섯째 권 원고에 대한 수정도 계속해 나갔다. 결과물은 5월26일 완성되었다.이에 따라 한글학회를 지원했던 미국의 록펠러 재단도 원조를 재개했다. 1956년 4월26일에는 록펠러 재단의 문화부장인 파스 박사가 한글학회를 내방했다. 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는 인쇄용 원조 물자가 여러 차례 배편으로 도착하기도 했다. 한글학회가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1957년 1~2권은 '조선말큰사전'으로, 3~6권까지는 '큰사전'이란 이름으로 전 6권이 완간되었다. 이렇게 온갖 수난을 감수하면서 민족의 얼이 담긴 큰사전은 편찬되었다. 이것이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말이다.  
    • 오피니언
    2020-10-18
  • [호일칼럼]데이비드 그레이버를 애도하며
      제국주의 침략의 정당성을 제공했던 인류학을 자본주의 비판의 대안학문으로 바꿨던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가 9월 2일 59세 나이로 죽었다. 우리시대 최고 인류학자라는 평판과 “우리가 99%”라며 2011년의 월가(wall street) 시위를 이끌었던 그의 죽음을 짧은 외신 보도 외에 나름의 논평 기사를 단 한 줄이라도 낸 우리 언론은 없었다. 인류학만이 아니라 기존의 경제학, 정치학 등을 전복하는 엄청난 업적을 냈지만, 연구논문 한편도 우리나라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다. 잘못된 우상(偶像, Idol)의 지적 권위주의가 득세하는 데는 대학에 몸담은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비판적 지식의 축적이다. 지금 대학은 외국 지식을 급속히 받아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비판적 기능이 거의 없어졌다.그레이버의 마지막 저서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서양이 아니라 인디언 사회와 같은 비서양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500년 전 인디언을 본 유럽인들은 인간이 왕의 통치를 받지 않고,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회적 조화와 번영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32)의 대립 이래 현대까지 자유와 권위, 자치와 통치, 자연과 제도라는 대립의 한 축이 되어온 사상의 흐름이 인디언 아나키에서 비롯됐다고 밝힌다. 우리는 미국 헌법이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 시민민주주의 이론의 맥락을 잇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이는 서양 중심의 견해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 당시 미국 헌법의 연방제를 비롯한 그 여러 민주적 원리는 인디언의 헌법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연방제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인디언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인간의 자유를 주장한 근대 계몽주의 자체가 인디언과의 만남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다. 그 뒤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나 페미니즘도 인디언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콜럼버스는 물론 그 후 미국에 온 서양인은 누구도 민주주의를 몰랐다.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영국인은 모두 신이 왕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이른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였다. 당시 유럽에는 그런 (민주주의)정부가 없었다. 특히 독립한 13개 주가 어떻게 하나의 나라를 세울 것인가 하는 헌법 제정 문제에 부딪혔을 때 ‘연방’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당시 호데노소니(Haudenosaunee)족 족장인 카나사테고(Canassatego)였다.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는 그리스가 아니라 인도이다. 서양학자들이 고대 인도 민주정을 서술하지 않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흔히들 시장을 국가권력과 무관한 순수경제현상으로 보지만, 자유시장이란 19세기 이후 조작된 환상에 불과하다. 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규제와 규칙 그리고 관료가 필요해졌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한 약관에 동의해야만 한다. 특히 현대에 와서 채무자가 아닌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인 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 주도로 세계경제를 파괴한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차입금이 커지자 국제통화기금은 지원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각국은 농업보조금이나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 예산을 삭감해야 했다. 그레이버는 2005년 미국의 기업 이윤 중 약 38%가 금융회사에서 나왔고, 비금융회사의 금융 이윤을 더하면 절반이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고, 도산을 해도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해주어 결국 금융 먹이사슬의 하층에 놓인 계급만이 채무자가 되고 있는 것이 1%만을 위한 미국이다. 관료제의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우리의 상상력마저 마비시키고 그것에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는, 그래서 우리는 관료주의의 희생양인 동시에 관료주의에 매료되고 나아가 동조하는 조력자들이기도 하다.
    • 오피니언
    2020-10-15
  • [호일칼럼]희지도 않으면서 수원수구하지 말라
      “잘 짓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다.”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 장자가 한 말이다. 그는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세속을 초탈한 사람이었다. 삶의 이단논법도 거부했다. 삶은 ‘맞다’, ‘맞지 않다’ 중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개의 상반된 가치는 마치 하나로 이어진 도르래와 같다고 했다. 때문에 둘을 나눠서 단정 짓지 말고 커다란 범위에서의 하나로 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상황에 맞게 조절해 가라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생활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작은 생각에 머물러서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따지지 말라고도 했다. 크게 보고 너그럽게 이해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사를 관조하다보면 극단의 형태를 갖춘 듯이 보이는 사람도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지금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 대는 단국대 기생충학 교수라는 서민 씨를 비롯한 부류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서민 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 문재인’이라했다. 그러면서 공부 못하는 학생과 문 대통령의 공통점 6가지를 제시했다. 전 과목을 두루 못하며, 핑계가 많고, 정신승리를 심하게 하면서 나쁜 친구를 사귀고, 듣도보도 못한 방법을 쓰며, 편드는 이가 있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나온 쓰레기들의 전형!”이라는 등의 부정적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니까 서씨는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지지세력)들의 집단난독’이라 반박했다. 자신과 아류들은 한없이 방어하면서 남들이 하는 말에는 비난만 해댄다. 설령 서민 부류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다손 치더라도 타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은가.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은 옳고 타인의 생각은 틀리다는 논리다. 이것이 독선이 아니고 뭣인가. 서씨는 “문 대통령은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에서 낙제점이고, 대통령 본인이 무능한 탓이건만, 반성하기는커녕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며 정신승리를 하고, 도저히 변명하기 어려운 부분에선 이전 정권 핑계를 댄다”면서 “사태가 이런데도 대깨문들은 대통령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며 옹호하니 앞으로도 대통령은 달라지는 게 없을 테고, 이 나라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이런 모습은 공부는 안하면서 남탓만 하는 학생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을 풀었다. 참으로 웃기지 않는가. 이 사람의 말을 곱씹어보면 자신의 말은 옳고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의 말은 틀리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지역민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에 의하면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전부 다 공부 못하고 무능력하고 혜안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인간이 불행히도 광주출신이란다. 물론 4살 때인가 떠났으니까 무늬만 광주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격언에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은 항상 가장 적게 행동하는 사람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요즘 부쩍 다언하는 서 씨를 비롯한 부류들은 민주화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본다. 이런 부류들을 보노라면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박정희, 이승만, 전두환 정권이 다시 한 번 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지막지한 총칼로 학생들은 물론 국민들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 지역에서 도륙을 일삼았던 그 정권들 말이다. 그런 시대에 이런 부류들은 과연 뭣을 했을까. 제발 희지도 않으면서 수원수구(誰怨誰咎)하지 말라.
    • 오피니언
    2020-10-14
  • 이제는 식량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요사이 농산물가격이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다. 채소와 과일값이 너무 올라서 주부들이 시장이나 마트 가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로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전체 지수상으로 농축산물 특히 채소가격 상승세가 가장 컸다"라고 설명했다. 농업은 그동안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이제까지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 농업이 내외부적 여건 변화로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은 식량의 78.6%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세계 5위의 식량 수입국이다. 매년 1600만t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데, 쌀은 국내 자급률이 97.3%(2018년)이지만 밀은 1.2%에 불과하다. 밀은 식생활 변화로 1인당 소비량(2018년 32.2㎏)이 쌀 소비량(61.2㎏)의 절반을 넘는 제2의 주식이지만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현상과 기후변화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면서, 식량 위기에 대처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로 인하여 WTO(세계무역기구)는 세계무역량이 더 축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ATC(아시아무역센터)는 각 나라가 식량 재고와 식량안보를 우려해 식량수입을 제한하거나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각 나라의 경제는 침체국면에 들었고, 내수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태풍·폭설·폭염·가뭄·냉해 등이 자주 발생하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의 생산기반인 농지는 2000년 189만ha에서 2018년 160만ha로 감소했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50배씩,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씩 줄어들고 있다. 헌법 제121조에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비농민의 투기적 농지 소유를 막기 위해서는 농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헌법적 가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겠다. 또한 종합적인 농지이용 계획과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 농지의 전용 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하겠다. 농업인구는 2000년 230만 명에서 2018년 130만 명으로 줄었고, 농촌인구의 고령화율은 44.7%로서 전체인구 고령화율 14.3%의 3배가 넘는다. 60세 이상의 농가 인구 비율은 58.3%로서, 농업을 담당할 후계인력의 부족이 심각한 실정이다. 농업 발전을 이끌어 나갈 유망한 예비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창업기반 조성비용부터 관련 교육, 컨설팅 등 종합적인 지원을 꾸준히 해야겠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잦은 기상이변은 농지침수나 시설붕괴 등의 피해를 주고 있고, 농업 생산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에 우리 시민도 동참해야겠으며,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의 중장기계획을 꼼꼼히 점검해 봐야 하겠다. 또한 농산물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생산자는 생산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유통단계를 줄여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즉, 과도한 수익을 내고 있는 도매시장 경매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도매시장을 구축해야겠다. 이번 2020년 노벨 평화상에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선정되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기 전 식량은 최고의 백신"이라고 강조했다. 안전한 먹을거리와 식량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농업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정부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 오피니언
    2020-10-14
  • [호일칼럼]순천을 떠난 나들이 길에서
    오랜만의 나들이다. 순천을 떠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안했던 것 같다. 잡다한 생각들을 동해바다에 던져버리고, 가벼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날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비우고 산다는 것을, 가볍게 산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욕심덩어리다. 하나를 얻으면 두 개를, 두 개를 얻으면 또 하나를, 욕심은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가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도 돈의 실체와 돈의 가치를 모르면서 가장의 구실을 못했었던 필자였다.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기도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처자식을 먹여살려야하는 가장의 위치를 잃어버린 지도 오래됐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위해 구차스럽게 살아오지도 안았다. 돈이 없으니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생각의 끝은 동해안 나들이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동안에 쌓였었던 짐을 마음배낭에 차곡차곡 넣어두고서 출발을 서둘렀다. 설렘의 시간들이 줄줄이 꿰어지는 밤이었다. 먹 거리를 비롯한 가벼운 옷가지 등 나들이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며 자세한 행선지를 설정했었다.순천만국가정원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을 찾았다. 역시나 대숲십리 길을 비롯해 꽃길단지는 대단위로 조성됐다. 특히 가을을 상징하는 국화단지가 대단위로 조성돼 있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려는 시민들의 건강생활도 한눈에 띠었었다. 입마개(마스크)를 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거리를 두고서 걷는 모습은 또 하나의 건강문화를 형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묻어났다. 건강을 위해서 입과 코 그리고 얼굴까지도 가려야하는 현실 앞에서 情문화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서렸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마음은 가까이하자는 말들이 회자되는가 싶다. 코로나19로 인한 현 사회문화는 다양한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추측된다.무엇보다 비대면 문화의 파급성은 정치계를 비롯해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밀집지역에서 감염되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진사례를 감안한다면 비대면 문화 실효성이 방증되고 있다는 것이다.사실, 나들이 길에서 느끼는 감정은 큰 틀에서 정이 아닐까 싶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의 감정은 다양하면서 무한하다. 아름다운풍광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정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정,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정 등은 나들이의 참 멋일 것이다. 아마도 그 멋을 알면서 즐기는 사람일수록 여유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속초에서의 하루는 보고픔과 그리움의 시간이었다. 평소부터 근면함과 성실함이 몸에 배있던  마레몬스 호텔 김흥재 사장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2년 전, 폴리텍대학 순천캠퍼스 학장을 지냈었다. 그는 순천의 풍광과 음식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 등 순천과의 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폴리텍 순천캠퍼스의 신축건물을 증축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발휘했었다. 건물부지의 승낙서와 140여억 원의 투자비를 만들어 냈었다. 당시의 순천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의 끈질긴 활동상은 눈부셨다. 순천시청으로부터 승낙서를 받기 위한 노력과 정부예산의 지원금 확보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폴리텍 순천캠퍼스의 참 일꾼으로 오늘의 신축건물을 짓게 했었다. 그가 순천에서 활동하면서 맺었었던 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다.순천에서의 활동상이 지금까지도 식지 않은 탓인지, 그의 몸과 마음은 활기가 넘쳤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까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로 진통을 겪고 있을지라도 동해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햇덩이는 식지 않았다. 마레몬스 호텔역시 식지 않는 열기로 힘차게 떠오르고 있다. “석류빛 그리움이 동해바다를 타고마레몬스에 밀려 오는 날단풍빛 보고픔은 설악산을 오른다 어둠 걷히는 아침 마레몬스에  뜨는 해 바라볼수록 붉게 빛나고 빛나 가을바다 출렁이고 가을산을 물들인다 시퍼렇게 멍든 동해바다그 옛날이야기 풀어두고 수평선 너머 사람살이를 정으로 정으로 동여매고 있다 신성한 설악팔경 모를지라도 봄이면 진달래 꽂바다를 여름이면 희뿌연 안개바다를 가을이면 오색 단풍바다를 겨울이면 새하얀 눈바다를 보여주는 설악산의 비경을 양사언은 알고 있을까 신선만이 알고 있을까 동해바다에 뜨는 해와달 그리고 수많은 별무리는 마레몬스 침실서 잠들고그리움 한 자락보고픔 한 자락 펼치고 펼친다”(필자의 졸시, 마레몬스에 뜨는 해 전문)  
    • 오피니언
    2020-10-12
  • [호일칼럼]세종의 애민정신 한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세종대왕은 백성들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당시 양반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25년 1443년 한글을 완성하였고 그로부터 3년간 시험 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하기에 이른다.세종대왕은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으니 한문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우리 문자를 창제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백성을 사랑했던 세종10년 진주에서 김화가 아버지를 시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면서 효자 효부 충신 등의 행실을 담은 책을 발간하는데 이른바 ‘삼강행실도’이다. 삼강행실도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 넣었으나 세종은 문자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림만으로는 제대로 된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 하게 되어 모든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글 창제의 필요성을 언급하기에 이른다.세종의 백성 사랑은 정치, 외교, 경제, 과학, 문화, 복지, 군사 등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세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시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시계에 십이지신상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와 같이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해시계 ‘앙부일귀’이다.뿐만 아니라 세종은 오늘날 출산 복지 정책인 출산휴가를 도입하였다. 관청의 여성 노비가 출산할 때 7일 뿐이었던 휴가를 100일 늘렸을 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30일의 육아 휴가를 주었다. 육아휴직 제도를 세계 최초 도입한 위대한 성왕 이었다. 뿐만 아니라 1446년(세종26년) “노비를 함부로 구타하거나 죽이지 말라”는 명을 형조에 내린다. 노비는 천민이지만 “하늘이 내린 백성”이고 군주는 만백성의 어버이므로 반드시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세종의 백성사랑은 노비에서 멈추지 않고 재소자인권, 장애인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과학 기술 발전에도 백성의 삶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이었다. 시계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시간을 공유하고 글을 모르는 백성도 소통하게 이르게 된 것이다.당시 조선의 양반 사회는 뿌리 박힌 중화사상으로 “민은 군주의 하늘이다”는 유교국가의 통치이념을 잘못 이해하고 양반에 의한, 양반을 위한, 양반의 중앙집권적인 중앙정부 체제였다. 따라서 이러한 양반의 막강한 권한은 왕의 재상을 임명하는 일등에 일정한 제한을 받았고 정사를 협의하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문제에 관해서는 재상의 권한과 국정처리 방식에 대해서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에 재상에 관하여 명기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재상은 군주와 쌍벽을 이루는 실질적인 수장이라고 볼 수 있다.소설가 정찬주는 “한글은 절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세종은 양반극우세력이 한글창제에 반대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의 충신 허조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세종의 이두문자 사용에 “신은 폐단이 일어 날까 두렵습니다. 간악한 백성이 율문(법)을 알게 되면 죄의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없이 법을 제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일어 날 것 입니다”라고 하자 세종께서 “그렇다면 백성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옳겠느냐? 백성에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그 범법 한 자를 벌주게 되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책에 가깝지 않겠느냐. 더욱이 조종(祖宗)께서 율문을 읽게 하는 법을 세우신 것은 사람마다 모두 알게 하고자 함이니.” 훈민정음 창제하기 1년 전인 1432년 11월 7일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세종이 큰 죄의 조항을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반포하려고 하자 이조판서 허조가 백성이 법을 알면 법을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생길까 두렵다며 반대하는 내용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백성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충신 허조 같은 청백리까지도 백성의 깨우침이 양반사회의 영역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며 어리석은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한글 창제는 물론 이두문까지도 반대했던 것이다.이렇게 볼 때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의문이 생긴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오직 백성사랑정신으로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또한 그 당시 명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조정의 대신관료 사대부들의 소중화 사상에서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양반 자신들과 지위가 동등해질 것을 두려워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속에서 훈민정음은 오직 세종의 백성사랑의 신념속에서 만들어 졌다.오늘날 세계에는 3000여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런 언어 중 문자가 있는 언어는 겨우 80여개 정도가 쓰이고 있지만 이러한 문자 가운데서 만든 시기와 사람, 목적이 명확하게 분명한 것은 한글만이 유일하다.세종대왕께서 “친히 새로 28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학습하여 사용하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배우기 쉽게 만들어 모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문맹률이 1% 이하인 세계에서 가장 낮은 1위인 우리나라가 입증하고 있다.한글은 표음문자이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로 분류되고 있다. 샘슨 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 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언어학 연구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 진열했는데 자랑스럽게 한글이 1위라고 한다.한글은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한글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는 쉽다. 영어 발음을 90% 이상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리의 표현을 우리말은 8800개를 낼 수 있는데, 일본어는 300개 중국어는 400개라고 한다. 우리말의 표현력이 20배가 넘으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한글이다. 현대 지구촌 세계 방방곡곡에서 한글 공부 광풍에 싸여 있다. 세계 유명한 대학에는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세계 각 도시마다 한글교육 광풍이 불고 있다. 특히 동티모르 짜아찌아족은 자신들의 말을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공식 문자로 받아들였다. 세종대왕의 백성사랑인 훈민정음은 이제 78억 전 인류를 사랑하고 소통되는 아름답고 가치있는 문자가 되었다.
    • 오피니언
    2020-10-11
  • [호일칼럼]우리가 바라는 신은 없다
    “하느님은 없다.” 이 말을 크리스천(Christian)이 듣는다면 대로(大怒)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회의 수도자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 독일태생)가 한 말이다. 그는 19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28세에 신부가 되었고 교의학 교수, 바티칸 공의회 신학 자문위원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 할 수 있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제자이기도 하다. 수많은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신학자들의 스승이었다. 이처럼 평생을 예수회의 수도자로 살았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하느님은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매우 아이러니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답 중의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바라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사실 인간은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되는 '도구로서의 신'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성당, 교회, 절 등에 가서 어떤 기도를 주로 하는가. 대부분이 아니라 거의 100%가 기도하는 내용은 “가족을 건강하게 해달라. 부자로 살게 해달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 승진하게 해달라. 각종 선거직에 당선되게 해달라”는 등등이 아닌가. 이런 기도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가 믿는 신을 원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때로는 신앙을 그만두기도 한다. 이건 결코 정상적인 신앙이 아니다. 만약 이런 기도를 신께서 다 들어주신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강자는 더 강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더 강하게, 강하게 기도를 할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신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하고 믿는 그런 신은 정말 다행히도 없단 말이다. 바야흐로 대학입시 철이다. 각 종교기관에서는 자녀들이 바라는 대학을 가길 간절히 희망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각종 기도회를 개설하기도 한다. 제도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의지하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적인 사상에 젖어 기도한다. 하지만 대학입시 성공의 향방은 정확한 학습방법과 온갖 노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겠는가. 물론 정신적인 위안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지 노력이나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필자도 기도를 한다.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특별히 뭔가를 이뤄달라고 애원하지는 않는다. 단지 감사의 기도만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기 때문이다. 상담할 경우 대부분은 고통을 호소한다. 이럴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이다. 살아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단 생명체에게는 삶이 중요하니까. 생명이 소멸된 상태에서는 부와 빈곤, 미와 추, 지위 및 학력의 높낮이 등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은가.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 내에서 현재를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경영방법이라 생각한다. 미리 앞날을 걱정할 것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어 현재의 삶을 잃어버려서도 안되지 않겠는가. 인생사 길어봐야 80평생이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백세까지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백세를 산다고 하더라도 그중 대다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은가. 때문에 욕심을 버리자. 그날그날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살아갈 때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실존을 향기롭게 해주는.  
    • 오피니언
    2020-10-07
  • [호일칼럼]경로당 회장에 사회공헌 수당 지급하라
      10월은 국군의 날로 시작하여 10월 2일 노인의 날에 이어 추석 연휴가 겹치면서 각종 기념일로 가득하나 코로나 거리 두기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10월은 경로의 달로 각 지역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축제로 위안을 받던 예년에 비해 행사축소 등 고위험군에 놓인 어르신들의 사기가 뚝 떨어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다. 1965년 88만 명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인구가 2000년에 이르러 전인구의 7.2%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으며, 2010년 12월 11.3%로 노인 인구가 542만에 이르렀다. 2017년에 722만 명으로 고령화율이 14.2%로 사상 처음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하였고, 올해 5월 말 현재 826만 5848명으로 노인 인구 가 15.9%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로 보면 2025년에 20.0%로 초고령사회로 진입이 예상된다. 특히 올해부터 55년~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진입함에 따라 매년 60만 명에서 80만 명까지 노인 인구 증가가 예상되어 노인 인구 천만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온 실정이다. 통계청은 2025년 노인 인구가 1051만1000명(노인 인구 비율 20.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어 노인의 세상이 된다. 특히 전라남도는 2019년 6월 말 인구수는 188만7991명이다. 전남지방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고령 인구 비중은 전남 23.1%(40만8000명), 광주 13.7%(20만4000명)로 예상되고, 2047년에는 전남 46.8%(75만4000명), 광주 36.6%(46만2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는 제4차 기본계획 의견 수렴과정에서 논의되었던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고령사회, 모두의 역량이 발휘되는 사회, 인구변화 대비 사회 혁신 등의 방안 하나로 노인 문제에 대한 전라남도의 획기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2018년 5월 기준 전국 경로당 수는 6만5803개로, 서울지역 경로당 수는 3400개 정도인 데 비해 농어촌이 많은 전남은 약 9000개소에 이르러 상당수가 농촌에 몰려 있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짧고 노년 인구가 적어 노인은 농경사회 지혜의 원천으로, 대가족 제도의 어른으로 존경의 대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노년 인구가 많아지고 산업화, 핵가족 제도의 영향으로 존경의 대상보다는 부양의 대상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시각이 더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 문제는 노인 스스로 해결하자는 등 다양한 자구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노인들의 생활 중심으로 손쉽게 접근하여 주위 사람과 인간적 대화를 나누는 여가시설이 경로당이다. 노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의 해결방안은 관계의 중요성이 필요하고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곳도 바로 경로당이다.경로당은 노인 사화의 공동체 생활 중심이다. 과거에 가족들이 담당하였던 안전망의 역할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사회제도로써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 어르신들이 서로 도우며 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기에 경로당의 총체적 기능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총체적 역할을 하는 경로당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로당 운영의 활성화를 위하여 필요한 지원 및 시책을 종합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경로당 지도사 제도를 양성화하여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읍면동 분회장들에게 공익활동의 기회로 순회 지도를 할 수 있게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경로당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경로당 회장들에게 사회공헌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여야 한다.현재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제도의 연장 선상에서 경로당 회장들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사회공헌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그래야 경로당에 온기가 돌고 어르신들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는 계기와 재능을 나누고 잠재적 경험을 끌어낼 수 있다. 이미 충청북도로부터 논의가 되었고, 경기도 일부에서 시작되고 있는 경로당 지킴이 사업으로 읍면동 관리자(분회장) 월 10만 원, 경로당 회장들에게 월 5만 원의 지급사례를 모델로 하여 경로당 회장들에게 책임성을 부각하고 격려하며 안전사각지대에 놓였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찾아 경로당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이다. 마을 노인들이 함께 이용하는 경로당 환경을 정비하고 서비스를 확대해 경로당을 활성화하여 노인 문제를 줄이고 나아가 복지 수준을 높이는 일조이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노인에게는 오랜 경험으로 축적한 깊은 지혜가 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박차를 가할 ‘사회공헌활동 지원사업’, 더욱 활기찬 미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경로당 회장들에게 사회공헌 수당을 지급하라.
    • 오피니언
    2020-10-06
  • 낙안성에 뜨는 달님은 알고 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고향산천을 그리워하고 부모형제와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낙안읍성에 떠오르는 둥근 달덩이를 바라보면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옛 풍습이 그려지고 있다.둥근 달님이 오봉산 기슭으로 뾰루둥 내밀쯤이면 차례가 마무리된다. 부모형제들은 오봉산을 바라보면서 차례음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봄, 여름, 가을까지의 일상들이 질펀하게 펼쳐진다. 송편하나가 빚어지기까지의 노력봉사에서부터 아이들의 성장과정까지 갖가지의 추억들이 버물어진다. 부모들의 어김없는 기도는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잘 되어달라는 소망을 달님에게 빌고 빈다. 우리고유의 토속믿음은 자연숭배에 닿고 있다. 특히 정한수를 떠놓고서 달님에게 빌었던 어머니상이 유별나다. 예부터 다수의 어머니들은 장독위에 정한수를 떠놓고서 집안의 평안을 빌었었다. 자신의 삶은 뒷전이면서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었던 우리네 어머니상은 지극정성이었다. 아직도 우리네 미풍양속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상숭배와 함께 조상의 얼을 되살리는 아름다운 풍속은 서양인들도 부러워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효를 중시하는 문화로써 대가족제도의 장점이 안일까 싶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정과 부모형제의 정을 잊을 수 없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 정이 그리워지고 보고파지는 것이 사람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우리고유의 정서는 정이다. 무엇이든 정에 얽혀서 살아온 민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부모형제의 정을 떠나 이웃 간의 정과 필연의 정은 떼 자도 뗄 수 없는 정이다. 예부터 우리민족에게는 큰 명절이 4개가 있다. 설, 한식, 단오, 추석이다. 그중에서도 추석명절은 최고의 명절이다. 그것은 풍성한 오곡백과를 수확해서 조상을 숭배함은 물론이고 부모형제를 비롯해 이웃사촌과의 나눔의 정이 있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한식은 봄을, 단오는 여름을, 추석은 가을을, 설은 겨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절을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1년에 4개의 명절을 지내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화목하게 지내라는 뜻일 것이다. 훈훈한 말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명절, 그 명절을 함께하는 우리민족의 고유정서가 사라져선 아니 될 것이다. 잠시, 우리의 명절의 유래를 더듬어 보자. 4대 명절은 농업을 중시하는 우리민족에게 큰 축제와도 같았다. 즐거운 휴식을 갖는 취지 속에는 조상에 대한 공경을 비롯해 농업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확인하는 뜻 깊은 자리라 아니할 수 없다. 부모형제를 비롯해 이웃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며 신명나는 놀이와 잔치를 벌이는 것은 내일의 힘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또 친지들과의 만남과 성묘, 차례 등을 통해 가족과 조상들에 대한 사랑과 공경하는 마음이 모아지는 풍습이다. 아마도 효를 중시하는 정서문화가 아닐까 싶다. 참으로 훌륭한 미풍양속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언제부터서인가 우리네 명절은 그 의미를 잃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얼까지도 퇴색되어가고 있다. 극도로 치닫고 있는 산업화시대의 물결에 휘말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미풍양속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생각하면 명절을 놀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류들도 있을 성 싶다. 그러나 명절은 결코 놀자는 취지로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선조에 대한 공경과 감사를, 이웃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의 장으로 생겨나게 됐었던 것이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산업사회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명절풍습만이라도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가오는 추석을 비롯해 명절을 맞이할 때는 우리네 얼과 정의 정서를 새겨보았음 좋겠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 가위, 혹은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했다. 송편이라는 떡을 빚어 차례도 올리고 매우 즐겁게 즐기는 명절이다. 우리나라의 추석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기원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전해오고 있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기망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편에서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를 가배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우리의 추석명절은 나눔의 정과 공경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풍성한 오곡백과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고, 둥근달님에게 평안을 빌면서 즐김의 정을 누렸었다.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코로나19로 멀어진 마음들을 추스르고 있는 추석명절로 이어지고 있는듯하다. 그중에서도 전남 순천시 풍덕동 추석명절의 정(情) 나눔은 작은 정성과 함께 멀어진 마음들이 좁혀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활이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의 정 나눔이다. 지난 21일, 풍덕동 새마을협의회에서 10kg 쌀 20포대 후원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정성들이 기탁됐었다. 기탁된 물품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 취약가구에 전달될 예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순금 풍덕동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한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나눔과 배려문화 조성으로 주민이 행복한 동네 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명절이 다가올수록 외롭고 쓸쓸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작은 정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산업사회의 각박한 삶이 펼쳐지더라도 우리네 미풍양속은 시들지 않을 것이며 지켜질 것으로 믿는다. 낙안성에 뜨는 둥그런 달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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