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8-24 (토)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임술농민항쟁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망국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1800년 6월에 개혁군주 정조가 갑자기 붕어했다. 11세의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고, 이후 헌종, 철종까지 안동김씨, 풍양조씨의 60년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권력독점은 매관매직으로 이어졌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다. 수령과 아전들은 백성들을 수탈하였고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의 삼정(三政) 문란(紊亂)이 극에 달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1855∽~1910)은 "수령과 아전은 강도와 다름없었다"고 개탄했다. 1862년에 임술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2월4일에 경상도 단성에서 시작한 민란은 2월14일에 진주, 3월27일 익산, 4월16일 함평, 5월은 충청도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3개월 사이에 경상도 19개, 전라도 38개, 충청도 11개 지역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당황한 안동김씨 정권은 5월 하순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개혁안을 마련하여 윤8월19일에 공포했다. 첫째, 전정에서 모든 부가세와 도결을 철폐한다. 둘째, 16세 미만과 60세 이상의 장정에게는 군역세를 거두지 못한다. 셋째, 환곡을 없애고 토지 1결당 2냥씩 부과한다. 미흡하지만  전향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농민항쟁이 조금 수그러들자 개혁안은 반포된 지 석 달 만에 폐지되었다. 지배층이 이권을 포기할 리 없었다. 1863년 12월에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였다. 대원군은 외척 정치를 청산하고 호포제와 사창제 등을 실시하여 농민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일련의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의 개혁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건조선을 유지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함이었다.  10년간의 대원군 집권이 끝나고 1873년 11월에 고종이 친정하자 이번에는 민왕후의 척족들이 판을 쳤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민씨들이 정권을 잡자 백성들이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자주 탄식하며 도리어 대원군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적고 있다. (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p 50)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삼남·경기지방에서 교세가 확장되자 1892년 11월의 삼례, 1893년 4월 보은 · 금구의 교조신원운동 등으로 반봉건 · 반외세 시위가 잇따랐다.  1894년 1월10일 밤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녹두장군 전봉준이 주도한 농민들이 봉기했다. 11일 새벽에 고부관아를 점령했는데 조병갑은 전주로 도망하고 없었다. 그런데 안핵사 이용태는 사태수습은커녕 봉기 주모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일시 피신한 전봉준은 3월20일에 무장에서 봉기하여 다시 고부관아를 점령하고 3월25일에 백산에서 8000명이 모여 ‘호남창의대장소’를 창설했다.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와 장성 황룡천 전투에서 관군을 대패시키고 4월27일에 전주성에 무혈 입성했다.   이에 놀란 고종과 민왕후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특히 민왕후는 대원군이 동학농민을 조종하고 있다는 소문에 신경질이었다.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군도 들어왔다. 그리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1895년 2월에 막강하다고 소문난 청나라 북양함대는 일본해군에게  궤멸당했다. 부패 때문이었다. 여제(女帝) 서태후가 60세 회갑을 맞아 북경 이화원을 중수하느라 해군예산을 몽땅 쓴 것이다. 북양함대에는 포탄이 단 세발밖에 없었다 한다. 패전한  청나라는 조선의 지배권을 포기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승승장구했고 1905년 5월에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일본은 9월의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고, 11월17일에 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강탈했다. 1910년 8월29일에 조선은 망했다.   조선이 왜 망했나? 제국주의 일본의 야욕이 주된 이유지만, 임금의 무능과 지배층의 부패도 작용했다. 고종이 민생정치를 했다면 조선이 그리 쉽게 망했을까?  
    • 오피니언
    2019-08-22
  • 공포의 균형(balance)과 냉전(cold war)
    열전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는 W. 리프먼에 의해 사용되었다. 20세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과 소련이 주도한 동구권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냉전은 결국 서구권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소련은 두 가지의 무기로 서구권을 크게 위협한 적이 있었다. 서구권을 물심양면으로 저격한 이 무기들은 공교롭게도 바로 게임 ‘테트리스’와 자동소총 ‘AK-47’이다.테트리스는 냉전의 끝자락인 1984년 6월 소비에트 과학원 컴퓨터 센터에 근무하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만들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Tetromino)’를 움직여 수평선을 빈틈없이 채워야 한다. 수평선은 완성 후 없어지며, 공간이 남을 경우 수평선이 계속 쌓인다. 수평선이 꼭대기에 닿으면 게임 오버다. 숫자 4를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 테트라(Tetra)에 파지트노프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Tennis)를 붙여 ‘테트리스(Tetris)’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트리스는 단순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다. 소련산 테트리스를 하느라 서구권 노동자들이 일을 게을리한다며 이 게임을 '소련의 비밀 첩보원'이라 부르는 농담도 돌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소련 무기인 AK-47의 AK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자동 소총, 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의 줄임말이다. 칼라시니코프는 소련 중부의 이젭스크 병기공장에서 총기 설계자였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말한다. AK-47은 1947년 첫 제품이 생산됐다. 그리고 49년 소련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육군과 해군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됐다. 출생은 47년, 출생신고는 49년인 셈이다. AK-47을 개량한 AKM, AK-74, AK-100 시리즈를 합하면 1억정이 넘는다. 워낙 전 세계에 많은 양이 공급되다 보니 지구상 소총 5~6정 중 하나는 AK 계열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우리말로 나이 70, 고희(古稀)를 넘겼어도 아직 현역이다.AK-47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AK-47 1정이 6 달러에 거래되거나 생닭 한 마리 또는 곡식 포대와 맞바꿀 수 있다. 그래서 AK-47을 ‘치킨 건(Chicken Gun)‘이라고 부른다. 소련이 마구 퍼준 탓도 있지만, 고장도 적고 조작이 간단하다. 소련은 동구권에 AK-47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타도 제국주의 전선에 나섰던 아랍ㆍ아프리카ㆍ아시아 등의 제3세계와 반미를 외쳤던 중남미의 게릴라 손에도 AK-47이 쥐어졌다. AK-47과 휴대용 대전차 무기인 RPG는 반군의 상징이다. 냉전 당시 동구권의 주력 소총이 AK-47이었다면 서구권은 M16이었다. AK-47과 M16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제3세계에서 정부군의 소총이 M16이라면 반군은 AK-47을 썼다. 반대로 정부군이 AK-47을 쏘면 반군은 M16으로 맞섰다. 9ㆍ11테러의 주범이자 알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이 2011년 5월 미국 특공대에게 사살됐을 때 그의 곁에는 AK-47이 있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무기가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리고, 각종 범죄자가 AK-47을 쏘는 TV 장면이 나온다. 칼라시니코프가 산적이나 테레리스트에게 준 것은 아니다.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에 퍼진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숙명의 라이벌 AK-47과 M16은 아직도 이 땅의 운명을 가누고 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고 표현한 괴벨스의 이야기처럼 분노와 증오의 인간 심리적 폭력성을 감춘 채 레트로 게임(retro game) 테트리스는 지금까지도 향수를 자극하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이탈리아 신부 두 명의 대화로 시작된다. “악령은 왜 숨어 있는 겁니까” 젊은 한 신부가 묻자, “악령이 자신의 존재를 들키면 인간들이 신을 믿어버리기 때문이지” 늙은 한 신부가 답한다. 악령과 신은 보이지 않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도 의도적으로 상호 불신과 증오를 부추기고 스스로를 숨긴다. 상대방의 주장을 핑계 삼아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도 닮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lies), 지독한 거짓말(damned lies), 그리고 통계(statistics)다”라고 표현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정치는 지독한 거짓말과 통계를 동원해 거짓말을 합리화한다. 냉전의 논리는 인간 이성의 그림자이며 정치적 도구이다. 그래서 공포의 균형(balance)과 동의어인 냉전에 대한 비판도 우리의 정치에서 현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냉전의 중심에서 공포의 균형을 체험하고 있다.  
    • 오피니언
    2019-08-20
  • 순천시 낙안면민 선진지 견학의 찬사
    긍정적인 사고는 항시 즐거움을 주고 희망을 준다. 전국 최초로 민간인 면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전남 순천시 낙안면장과 경북 의성군 안계면장은 지역민을 위한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하면서 갖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신길호 낙안면장은 지역민이 모아둔 종자돈을 기반으로 각종 국비와 도비.시비 등의 예산을 끌어 오는 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주민간의 소통은 물론 주민과 관과의 소통과 화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가끔 그는 외롭고 힘든 등산을 하는 등산객이 된다고 했다. 면민들은 따라오지 않는데 홀로 산에 오르고, 혼자만이 정상을 정복해 힘겨운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현실감에 사로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주민 한 사람 한사람을 만나고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낙안면 종합발전계획수립을 위한 일념으로 잡다한 생각은 갖지 않는다고 했다.역사와 전통이 있는 낙안면의 주민들과 함께 가는 길은 결코 쉽지는 않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 새로운 현실문화를 접목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면민들의 사고를 바꾼다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쩌랴! 선인들의 전통과 풍습위에 현대의 산업문화와 관광문화를 접목시켜 더욱 발전하고 도약하는 낙안지역을 위한 신념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얼굴표면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것이다.그의 사고가 짙어갈수록 그의 신념은 굳어만 가고 발걸음 또한 분주했다. 자신의 신분과 똑같은 두 번째 공모면장인 경북 의성군 안계면장을 찾기로 했다. 그것은 상호 업무교류와 협력증대였다. 더욱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문물의 교류는 한 차원 앞서는 행정이었다. 낙안면과 안계면의 서로각기 다른 양쪽지역민들의 정서교환과 윤택한 생활까지도 나누는 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드디어 그는 지난 9일, 일일보고에서 결정을 했다. 주민대표들과 함께 낙안면 종합발전계획수립을 위한 선진지 견학은 경북 의성군 안계면과 안동시 유은복지재단을 견학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세부일정계획수립과 그에 따른 통보를 했었다. 낙안면 직원들의 활동도 동분서주했다. 일선업무를 맡고 있는 송 상현 팀장을 중심으로 한 선진지 견학 팀은 밤잠을 설쳐댔다.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이동거리에 준하는 준비물, 그리고 양 기관의 현황과 교류문제 등으로 업무시간외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중요했다. 앞으로 30년간에 걸쳐 낙안면의 청사진이 될 '종합발전계획수립'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 첫 번째가 주민여론수렴이며, 두 번째가 주민들의 선진지 견학이었다. 따라서 신 면장을 비롯한 직원일동은 주민과 관, 주민과 주민간의 소통은 물론 면민화합과 낙안지역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했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그 중에서도 지난 1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된 선진지 견학 행사는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지금까지의 선진지 견학은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으로 그쳤다면 이번 선진지 견학은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느꼈던 소감을 고민 끝에 피력하는 선진견학토론문화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주민대표들의 경북 의성군 안계면 지원센터인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사업개발 추진과정의 브리핑과 안동시 유은복지재단의 새싹재배업과 장애인재활사업 이해와 수익창출과정의 노하우를 견학하는 모습은 대단했다. 단 한사람도 한눈을 팔지 않았으며, 심오한 표정으로 자신의 사업과 연관하는가 하면 낙안면의 대단위사업으로 전개하는 모습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시도하고 있는 2000억 규모의 사업개발현장을 견학하고 그 주안점을 배워 낙안면 개발사업에 참고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예산확보를 어떻게 했는지, 전라도와 경상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민간인 공모면장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를 상호업무교류와 협력을 증대키로 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아들 딸들은 도시로 내 보내면서 청년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게끔 유도하는 정책사업의 모순성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또 각 마을별로 나타나고 있는 님프현상과 소외마을의 해결책은 무엇인가도 심도 있는 질문과 함께 다양한 질의답변이 이뤄졌었다. 이날 선진지 견학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은 “낙안면 종합발전계획수립을 위한 선진지 견학으로 새로운 낙안면을 조성해야 한다”며 “옛것을 바탕으로 한 관광산업과 낙안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낙안면종합발전계획수립'을 위한 선진지 견학은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국도비와 시비의 예산확보에도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간다는 옛말이 새롭다.    
    • 오피니언
    2019-08-19
  • ‘부자세습 무효’는 교회 사유화의 경종
    목사직의 부자 세습 논란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고도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목사라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은 들지 아니한가.   담임목사직의 부자 세습 논란으로 갈등과 사회적 이목을 받고 있던 명성교회에 대해 교단의 재판국이 불법 세습이라고 판결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어렵게 내려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결정이다. 이번 재판국의 판결은 명성교회는 물론이고 다른 교회들의 부자 세습 관행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명성 교회의 부자 세습 무효 판결이 한국 교회가 추락하는 교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교회가 사회적으로 ‘본래의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거듭 태어나는 환골탈퇴의 반성과 자성과 각성의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면서 환영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재판국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재심에서 ‘명성교회의 담임목사직의 부자 세습이 교단 헌법상 세습금지 조항을 위반하여 불법이고 무효’라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에 참석한 14명 위원 전원일치의 합의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고 개신교회에 만연한 목사직의 세습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8월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적법하다는 교단 재판국의 판결을 취소한 제103회 교단 총회의 결정을 받아드린 것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장홍구 재판국장은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청빙안 승인 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세습 반대를 주장해 온 일부 신도들과 개신교계 시민단체는 환영했다. 서울 동남노회 김수원 목사는 “재판국원 여러분들이 끈기 있게 인내하시면서 바른 판결을 내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1980년 김삼환 목사가 작은 상가건물에서 시작한 명성교회는 현재 등록 교인만 10만 신도에 연간 헌금도 400억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김삼환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을 지냈고 2016~2018년 숭실대학교 이사장을 지낸 교계의 유력자이다.      2017년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담임 목사에 취임하면서부터 부자 세습 논란으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는 은퇴하는 목사의 가족이 목사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교단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예장 통합교단 총회는 2013년 교단 헌법에 ‘은퇴하는 담임 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세습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명성교회측은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김삼환 목사가 2015년 정년퇴임 후 2년이 지난 뒤에 김하나 목사를 청빙했기 때문에 ‘부당한 세습’이 아니라 ‘정당한 승계’라고 주장한다. 이는 ‘은퇴하는 목사’냐 ‘은퇴한 목사’냐의 차이다. 명성교회측은 김삼환 목사는 ‘은퇴한’ 목사이지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측은 ‘아 다르고 어 다른’ 해석이고 ‘눈 가리고 아웅’식 이라며 반발하면서 교회 권력이 사유화되면 교회 내의 부당한 횡령, 추행을 비롯한· 성범죄 등을 견제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2018년 8월 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교단 총회가 재판국의 판결이 잘못됐다며 재심을 결의했고, 10개월 만에 헌법 위반으로 불법이고 무효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명성교회는 세습이 아닌 적법한 절차를 거친 승계라며 총회 재판국의 판결에 불복하고 있다. 특히 명성교회 측은 다시 재심청구를 청구하거나 교단을 탈퇴하거나 사회법에 따른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명성교회 부자세습 논란은 이번 판결로 마무리 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다음 달 열릴 총회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야 하므로 부자 세습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현재 부자 세습 논란을 빚고 있는 교회는 여러 곳이다. 무려 150여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한국 교회의 세습 관행을 해결하는데 이번 판결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국내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교단 헌법에 세습 금지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교회가 이미 부자세습을 마쳤으며 심지어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교단 헌법의 부자세습 금지 조항을 무시하거나 교묘하게 피하는 꼼수로 변칙 세습 관행이 만연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음모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교인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교회를 마치 자신들의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세습은 물론이고 성추행을 비롯한 부당한 횡령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 부정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 아니한가. 특히 대형 교회의 경우 돈과 힘으로 교단을 장악하고 전횡을 부리다가 교인간의 갈등으로 반목과 폭력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다. 방인선 교회개혁 실천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판결은 세습을 금지한 법 조항을 삭제하려는 명성교회 시도가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면서 ‘대형교회가 돈과 힘으로 노회와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추락시키는 위험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이번 판결로 한국교회가 개신교회의 잘못된 교회세습 관행을 개선하고 교회를 사유화 하려는 부끄러운 야욕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희망한다.
    • 오피니언
    2019-08-18
  • 홍경래 난과 김삿갓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부임했을 때 그의 손자인 병연(炳淵-1807~1863))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평상 시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부른다. 본관은 안동이며,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다.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이때는 조선조 순조가 왕위에 있었으며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여 정치를 농단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니 나라의 기강은 흐트러지고 국가 재정의 근간인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삼정(三政)이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였다.이 틈을 타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는 지역 차별 철폐를 주장한 피지배층의 민중항쟁이다. 이는 서북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안동 김 씨 세도 정치의 타도였다.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중엽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민중 항쟁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1800년, 홍경래는 약 10년 동안 서북인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했고, 항쟁은 홍경래를 중심으로 우군칙·이희저·김창시 등이 주도했다. 이들은 순조11년인 1811년 12월 18일 다복동에서 김창시가 “조선 왕조 개국 이래 서북인 가운데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울 사대부는 서북인과 혼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라는 격문을 공표한 것을 시작으로 1000여 명의 군사가 일으킨 민중항쟁이었다.관군들이 평안도 일대를 초토화시키며 양민들까지 적으로 간주해 마구 학살하자, 이에 격분한 농민들이 정주성에 모여들었다. 관군은 연일 정주성을 공략했으나 죽기 살기로 항전하는 농민군을 쉽사리 꺾지 못했다.26일 홍경래는 남진군을 이끌고 안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박천의 송림리를, 북진군은 정주에서 선천으로 진격해 선천과 철산을 잇달아 장악했다. 이때 농민군이 앞장서 가산·박천·선천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가산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칼을 맞아 죽었고, 선천부사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항복했다. 이로 인해 김익순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했고, 가산군수 정시는 만고의 충신이 되었다. 관군과 반군은 서로가 공방을 벌이며 승패를 가리지 못하던 중 4월 19일 새벽에 관군은 성 밑으로 굴을 파고 설치한 1800근의 화약을 터뜨려 정주성을 무너뜨린 뒤, 성 안으로 몰려 들어가 봉기군을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홍경래는 총탄에 맞아 전사했고, 홍총각 등은 사로잡혔으며, 우군칙과 이희저는 달아났다가 이튿날 체포되었다. 당시 정주성에 있다가 체포된 사람은 모두 2,983명으로 이 가운데 10세 이하 소년224명, 여자 842명을 뺀 1917명이 모두 참수됐다. 이렇게 하여 소위 홍경래의 난은 마무리됐다.김삿갓의 집안은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으로 인해 역적의 자손이라 자식과 손자들은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하거나 종이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죄는 당사자 김익순에게만 묻고 아들 손자들은 종이 되는 신세를 면했는데, 여기에는 세도가 안동 김 씨들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김병연의 어머니는 집안 내력을 철저히 숨기고 살면서 남달리 영민한 작은아들 병연을 글방에 다니게 했다. 병연은 열심히 공부했고 스무 살이 되자 고을에서 보는 향시에 응했다.시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이었다. 김삿갓은 가슴을 펴고 시를 써내려갔다. 그중 마지막 한 구절은 이렇다 “임금을 잃은 이 날 또 어버이를 잃었으니 한 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네 아느냐 모르느냐. 이 일을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와 같이 김익순의 죄를 탄식하는 시이다.김삿갓은 장원급제를 했고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옛 일을 더 감출 수가 없었다. 병연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듣고 난 뒤부터 심정이 몹시 괴로워 술과 시로 세월을 보냈다.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는지 스물두 살 때 장가를 보냈고 이어 손자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 뒤 그의 발걸음은 위로는 강계·금강산·영월 아래로는 여산·지리산·동복까지 끝없는 방랑의 길을 떠돌았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시가 물처럼 쏟아졌고, 그의 숨결이 닿는 곳마다 해학이 넘쳤다.그는 쉰일곱 살에 전라도 땅 동복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렇게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떨쳐버렸다. 김병연은 스스로 그의 할아버지의 잘못을 회개하고 방랑하면서도, 기성 권위에 도전하는 등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풍자하였다. 그래서 그를 참여시인 또는 민중시인이라고 부른다.유해는 강원도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에는 광주 무등산 기슭에,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 오피니언
    2019-08-13
  • 순천국가정원 ‘광풍 각’에서
    순천국가정원 서문으로 입장하여 우측으로 걷다 보면 해룡산성 끝자락 한국정원에 이른다. 주변 지형을 이용하여 아치형 다리를 만들어 조성된 정원에 들어서면, 창덕궁 후원의 정자를 그대로 옮겨 놓은 ‘부용정’에 잉어 때가 한가로이 노니고 있다, 약간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광풍 각에 이르게 되는데 사방으로 확 트인 마루에 걸 터 않아 쉬노라면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순천의 상징 봉화 산이 평화롭게 시야에 들어온다. 광풍 각은 담양군 소쇄원에 있는 ‘광풍각’을 그대로 재현하여 놓은 것으로 굳이 담양을 가지 않아도 그곳의 느낌을 담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광풍각’이란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 깃든 곳, 사랑방이다. 그 의미를 생각하며 먹구름 같이 꽉 막힌 어지러운 현 시국이 잘 풀려 답답한 마음에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요즘 필자의 머릿속에 두개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하나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G20정상회의 시작 전 약 10초간의 악수의 장면이다. G20정상회의가 마무리되면서 공동선언문에 ‘자유무역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나타낼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 즉 자유무역 촉진’을 표방한 후, 반도체 소재 핵심 3개 품목에 수출규제를 내렸다. 이어 이달 7일 부터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 무역 관리령 개정안 공포를 강행했다. 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영향력 상실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반사작용이다. 총성 없는 경제전쟁을 선포하여 패권주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꾼 것이다. 마치 ‘나쁜 놈들의 전매특허’ 뒤통수치기 수법으로, 또 하나는 ‘나쁜 놈들의 집단 ’아베신조의 아바타 3인방 ‘고노다로’ ‘세코 히로시게’ ‘아소다로’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경제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아베 신조는 조슈번(야마구치현) 출신으로 가계도를 살펴보면 조부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의 마지막 총독으로 전쟁 물자동원에 조선의 인력과 물자수탈에 혈안이 되었던 인물이다. 외고조부 오시마 오시사마는 1894년 일본군 8000명을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한 자이며, 외조부 전 내각 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스는 개헌과 재군비를 부르짖었던 인물로 만주국을 만든  일등공신이자 A급 전범이다. 또한 현 내각 부총리인 ‘아소다로’는 사쓰마((가고시마현) 출신으로 이들은 과거 정한론을 만든 핵심 후예들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는 그들의 가계와 연관되어 있어 인정하기 어려운 아킬레스건이다. 광복 74주년을 맞아. 민족이 겪었던 지난한 한을 어찌 다 표현하랴! 이웃이나 국가사이에는 두 종류의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지옥에서 온 이웃’(neighbor from hell)이고, 다른 하나는 ‘천국에서 온 이웃’(neighbor from heaven)이다. APT 층간 소음이 있다고 문을 차거나 욕을 하는 사람, 주차문제로 이웃집 차바퀴에 펑크를 내는 사람, 틈만 나면 노략질하고 침략을 일삼는 왜구, 현 아베정권과 같은 악하고 해로운 이웃을 ‘지옥에서 온 이웃’이라 부른다, 반면 상냥하고 친절하며 휴가 때는 신문도 주워주는 등 도움이 되는 선한 이웃,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양심 있는 일부 일본인을 “천국에서 온 이웃”이라 부를 수 있다. 이웃을 잘 두면 행복하지만 잘못 만나면 철천지원수로 불행해진다.우리와 지역적으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웃 일본을 침략하거나 괴롭힌 적이 없다. 백제의 왕인 등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는 등 문물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침략을 계속한다. 1592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의 양란을 일으켜 36년간 일제강점 서곡의 예고편을 만든다. 36년간의 압제 동안 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죄악을 다 말할 수 없다. 과거사를 약속위반이라고 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아베정권은 아주 나쁜 이웃이다. 그러나 한미일은 삼각 협력으로 북중러를 견제하는 역학 관계에 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소재와 부품을 들여와 반도체를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면, 미국에서 IT완제품을 생산하는 분업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GVC(Global Value Chain, 세계적인 가치사슬)’라고 말한다. 한국과 일본은 공급사슬로 묶여 있기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 되면 우리만 피해를 입지 않고, 부메랑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경제구조다. 광복 74주년, 우리의 각오는 ‘이 사태를 반드시 승리로 끝낸다’는 확신을 갖고, 위기상황일수록 뭉쳐 하나 됨이 중요하다. 적당히 타협하고 조금이라도 굴욕적인 외교를 한다면, 치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는 잘못된 유산을 후손에게 남겨주지 않겠다는 결의와 다짐을 광복절에 하여보자.
    • 오피니언
    2019-08-11
  • 위기를 기회로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하여 일방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발동한 데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명단)’ 제외 조치를 강행하였다. 이로써 이미 통제 중인 반도체 3대 품목 외에 첨단소재와 전자 등 1120개 품목이 이달 하순부터 수출규제를 받게 됐다. 사법부 결정이라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임에도 일본은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로 경제보복을 한 것은 자유무역질서를 훼손하는 도발행위로 심히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 핵심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는 한국 산업의 약점을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객이 왕인데 물건 파는 사람이 너한테만은 안 팔겠다는 행태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시민들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자발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노노재팬(닷컴)’ 포털 사이트가 등장하여, 실시간 검색어에 불매할 일본 상품의 대체상품 정보까지 알려주고 있다. 일본 여행카페가 ‘휴업’ 하는가 하면, 분노의 시위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무역협회(KITA)와 관세청이 2015년 6월에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1965년 한일수교가 이뤄진 이래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에 무역수지 흑자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50년 동안 일본이 한국과 무역하여 흑자를 낸 돈이 무려 576조 원에 달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우리나라가 일본과 무역에서 적자를 낸 배경을 보면, 국내 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기차에 사용되는 각종 기술들은 일본 기업이 특허를 갖고 있고, 의료 분야에서도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기구들 대부분이 일제다. 제조업체들의 자동화 공장에 사용하는 로봇과 관련 센서나 사물인터넷(IoT)용 부품도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기려면 허약한 경제 체질을 바꿔야겠으며, 미리 철저하게 대비해야겠다. 먼저 청와대와 외교부 안에 일본 관련 인적정보망이 너무 약하므로, 일본 내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를 많이 길러내야 하겠다. 또한 대일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신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를 키워야겠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신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 개혁을 실시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4년제 대학 가운데 절반 정도가 단 한 개의 기초과학 학과도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서울대 컴퓨터공학 정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55명 그대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인공지능), 클라우드, VR·AR(가상·증강현실), 빅데이터 등의 분야에서 2022년까지 개발자 3만1833명(석·박사급 1만9180명 포함)이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다.다행히도 대기업이 필요한 소재·부품·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국산화 기술을 가진 국내 중소기업들이 있다는 소식에 희망이 보인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은 "내년 2월 정도면 전부 불산 쪽은 (국산화가) 가능하지 않겠냐…“라고 말하고,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도 "5년 내로는 (국산화가) 다 가능하다…"라고 했다.   대기업은 국내의 우수한 중소기업과 서로 협력하여 반드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하겠다. 정부도 다양하고 실리적인 외교로 일본과 수출 규제를 철회하는 협상을 계속하고 더불어 정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장기적인 과학기술정책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겠다. 국가 차원에서 미래 성장 동력에 필요한 규제를 풀고 각종 지원책과 인센티브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우수한 세계기업을 통해 글로벌 공급체인의 다변화를 유도하도록 해야겠다. 이제 민간이나 정부, 여야를 따지지 말고 국가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오피니언
    2019-08-08
  • 국가 없는 아류 이기주의는 허상일 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참으로 이상한 작태다. 안 산다고 하더라도 팔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얼마나 한국을 얕봤으면 이런 짓거리들을 하는 것일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특히 한국당을 비롯한 자칭 보수라는 패거리들은 연일 딴지다.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속 시원하게 지지를 해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진정한 ‘보수’는 국가를 지키려고 애쓰는 행위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사이비 보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생명 유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국민들은 얘기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악질적 사태로 분노심이 치솟을 때 시원한 사이다 역할을 하는 쪽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바로 북한을 말하는 것이다. 연일 일본을 향해 십자포화를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2일 북한 노동신문은 “파렴치한 날강도의 전횡, 세차게 폭발하는 반일기운”이란 제목으로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북한의 한 대남선전매체는 "과거청산을 거부하면서 대세에 역행하는 못된 짓은 일본의 고립을 더욱 촉진시킬 뿐"이라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막대한 해악을 끼친 죄 많은 나라"라고 일갈했다. 이외에도 여러 각도에서 원색적으로 쏘아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일부 치졸한 작자들의 쓰레기 춤이 괴롭히고 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청와대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죄다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태도냐. 온 국민이 힘을 합쳐서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친일·반일 편가르기 하는 게 과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고 했다. 말은 바로 해보자. 황 대표가가 과연 단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힘을 합쳐 대응하려 했는가를. 나경원 원내대표는 “2년 내내 ‘북한팔이’ 하던 정권이 이제는 ‘일본팔이’로 무능과 무책임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면서 “저성장에 오랫동안 신음한 일본처럼 대한민국을 일본화하는 정부야말로 신친일파 아닌가”라고 했다. 마치 잘못되길 바라는 저주가득 찬 주술 같다. 민경욱 대변인은 또 어떤가. “문재인 정권에 충성하면 ‘애국’, 정당한 비판을 하면 ‘이적’이라는 조 수석의 오만함과 무도함에 국민들이 치를 떨 지경”이라 했다. 사실은 나날이 일그러져 가는듯한 민 대변인의 얼굴을 그만 보고 싶다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가 보다. 당리당략적 작태의 극치다. 그들의 안중에는 국가나 국민은 이미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이비 보수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지지율이 나날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일부 희한한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말이다. 이들 언론들은 어쩌면 자연도태 될지도 모른다. 일본어판에서 내부를 향해 직접 공격했다. 중앙일보는 “문재인 정권 발 한일관계 파탄의 공포”,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한국” 이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조선일보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언론이길 포기한 것과 같다.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 “북미 정치쇼에는 들뜨고 일본의 보복에는 침묵하는 청와대”라는 제목으로 내부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에는 끽소리도 못했으면서. 오히려 찬양을 했잖은가. 일부 일그러진 일본인들보다도 더 혐한 발언을 했다. 도저히 대한민국 사람 같지 않다. 추한 몸부림은 역겹기까지 하다. 마치 중세 봉건제도가 무너져 갈 때 말라 비틀어져가는 기사 같다. 세르반테스가 환생해 그들의 흉골을 본다면 뭐라 할까.
    • 오피니언
    2019-08-07
  • '낙안운동' 펼치는 리더의 발걸음
    김용수/시인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즉, 마을공동체화에서부터 면민공동체화를 이끌고 있는 리더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장은 전국 최초로 민간인을 공모로 뽑았으며, 주민자치행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민간인 출신의 신길호 면장은 날마다 분주하다. 자신을 선택해준 면민을 생각해서라도 촌음을 아껴서 면민행정에 전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면민화합에도 쉴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는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한 나머지, 영농일은 협업화화하고 외국인근로자와 기계화로 노동력을 해소키로 했다. 또 공동체법인을 만들어 청년일자리와 농촌자녀들의 문화교육혜택과 임대농업의 소득원으로 청년농업인을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금융지원을 공모하고 고통분담을 극복하면서 공동체화로 협력성장의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농업기술의 변화다. 소규모정밀농업에서 대규모기업농업의 협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휴경지를 재활용해야 하므로 쉬운 농작물을 선택해서 기업농(법인농)에 임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관광자원을 발굴해 인접요소들의 융, 복합으로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두능 마을의 정원민박과 건강식단 그리고 주민친절을 들 수 있다. 또 상송마을은 정원 숙박을 비롯해 꽃집과 로얄제리, 온천욕, 템플스테이 등이다.이뿐 아니다. 그의 신념은 대단했다. 전국최초의 민간인 면장으로써의 자존감과 포부는 엄청 크고 넓다. 아프리카 케냐 수도 나이로비 남부 위성도시 키텐겔라 마사이족을 상대로 세계화를 위한 “낙안운동”을 펼쳤다. 케냐방문단은 낙안면 관계자들과 업무교류협력을 논하면서 케냐 커피콩 가공사업과 낙안특산품 오이피클 수출방안 등 각 지역의 특산품을 이용한 지속적 교류 협력을 약속했었다.특히 이들은 지난달 28일, 마지막 날에 낙안면행정복지센터에서 4박 5일간의 소감발표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케냐 키텐겔라 시내에 마사이족 전통마을을 낙안읍성처럼 복원해 관광사업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했다. 또 이들은 귀국 후 정부의 승인을 받아 지방정부, 시민단체, 부처별 장관 등과 함께 재차 방한토록 노력하겠다는 소감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신 면장은 방문단에게 수료증을 전달했으며, “낙안면과 키텐겔라 지방정부가 첫 교류를 시작한 만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서로가 잘사는 공동체사업이 활성화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었다.낙안면은 전국 최초로 면단위 30년 종합발전계획수립 연구용역을 추진 중에 있으며, 면장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끔, 면민의 의지를 담은 백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한편 케냐 키텐겔라 시는 수도 나이로비 남부 위성도시로써 인구 70만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18,292ha이고 언어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요산업은 목축업과 농업이다. 아마도 낙안면장의 이 같은 행보는 자치행정의 장점이면서 특이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주민의 자존감과 면민의 힘을 길러주는 “엄지 척”으로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을 뿐 아니라 낙안운동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의 “내 친구 뚝배기의 엄지척”이라는 졸시를 게재해 본다.   내 친구 뚝배기는 엄지척의 마력을 지녔다 뚝배기에 가득 담은 정연약한 손바닥에 부어주며활기 모으는 손놀림도 부어준다 따라서 해 보세요손바닥을 쭉 펴세요손끝부터 감아서 쥐어보세요주먹을 불끈불끈 쥐어보세요엄지를 똑바로 펴보세요최고라는 자신감이 샘솟지요그게 바로 엄지 척이래요 아빠도 엄지척엄마도 엄지척모두가 엄지척엄지척으로 힘 돋고팔목핏줄도 불끈 솟아 바라보는 눈동자도 빛난다 내 친구 뚝배기는 엄지 척의 괴력을 지녔다 하늘의 기를바다의 기를땅의 기를숲의 기까지 불어넣어 힘없는 사람에게 엄지척!소외된 이웃에게 엄지척!힘 모으고 정 모아주는 엄지척, 엄지척을뚝배기로 부어주고 있다 (내 친구의 엄지 척 전문)   
    • 오피니언
    2019-08-06
  • 직장 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박장남에듀A 인재개발원 원장/경찰인재개발원 외래교수   간호계의 ‘태움’ 문화, 어느 IT업체 사업주 Y아무개의 직원 폭행, 대기업 오너 일가의 폭언 등이 이슈화 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약 70% 내외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에 정부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정책과제로 선정하여 관계부처 합동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수립하였고, 후속 조치로 2019.1.15.근로기준법(제76조의 2) 개정을 통해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법률에 규정하였고 2019.7.16부터 시행했다. 종전까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일부 특정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규정을 상해나 폭행. 협박 등 개별법으로 대응해 왔었다.이러한 체계가 다양한 양상의 괴롭힘을 포섭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감독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고려하여 ‘직장 내 괴롭힘’ 규율을 위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것이다.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은 문제된 행위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신체적·정신적 고통이나 근무환경 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직장 내 괴롭힘 판단 요소의 행위요건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일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는 3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또한 상시 10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는 사내에서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관련사항, 사건 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방지 조치등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한다.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가장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할 사람은 사업주이다.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업주는 이 조사기간 동안에는 피해 입은 노동자 혹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해주어야 하는데 근무 장소를 변경하거나 유급 휴가명령 등 상황에 따른 적정한 조치를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지체없이 행위자에 대한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업주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고 조치에 대한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를 위반시 근로기본법 제76조의 3항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법에 정의하고 금지하면서도, 행위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규정을 두지 않고, 사업장별 상황에 맞게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조치를 정하고 그에 따르도록 하였다.직장 내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예방·조치할 경우 근로자 이직감소. 조직문화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 등의 긍정적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이러한 긍정적 효과 때문에 선진국과 일부 국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우리나라도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계기로 직장내 괴롭힘 예방에 대한 적극적·능동적 의지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직장 내 괴롭힘 사건 발생 후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예방이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또한 피해자의 피해 상태회복, 인격권이 보호되는 근무환경이다.사업주의 적극적인 의지가 행복한 직장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 오피니언
    2019-08-05
비밀번호 :